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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by insight40980 2026. 1. 20.

 

시인 윤동주 (1917.12.30. ~ 1945.2.16.)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韓人村)을 형성했다.

  윤동주는 명동학교(明東學校),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그리고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 귀국했을 때. 뒷줄 맨 오른쪽이 윤동주.

 

  윤동주는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되었으며,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고종사촌형인 송몽규 (宋夢奎)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들의 사인이 일본의 염산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었으며 이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직전 한국말로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는 기록이 있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으며,  일제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